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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못낸 790명에 14억 무이자 대출…장발장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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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금 못낸 790명에 14억 무이자 대출…장발장 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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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2.22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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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이 은행 키울 생각 없어요. 제발 저희 문 닫게 해주세요. 그게 바람입니다."

무담보·무이자로 최대 300만원까지, 단 1%의 이익도 내지 않는 이 은행의 목표는 최대한 빨리 문을 닫는 일이다.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목적을 가진 이 은행은 생활형 범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돈을 내지 못해 부득이하게 노역을 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장발장은행'이다. 재원은 기부자들의 후원을 통해 마련된다.

지난 2015년 설립된 장발장은행이 이달말 창립 5주년을 맞는다. 5년 동안 장발장은행은 790여명에게 14억170만7000원을 빌려줬다. 빚 독촉을 하지 않아 아무도 갚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빚을 갚기 시작한 상환자 수가 2월 기준, 427명으로 대출자의 절반을 넘었다. 이중 빚을 다 갚는 사람은 130명으로 상환액은 3억7324만4700원이다.

장발장은행에 따르면 매년 80만명 내외의 사람이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현행법상 형이 확정되고 30일 이내에 벌금을 완납하지 못하면 노역을 통해 벌금을 갚아야 한다. 매년 약 3만5000명이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을 하고 있다. 가벼운 죄를 범한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지 않기 위해 만든 벌금제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돈 때문에 교도소에 가고 있다.

뉴스1과 만난 오창익 장발장은행 운영위원(인권연대 사무국장)은 "벌금형이라는 것은 원래 가벼운 범죄를 처벌하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돈이 없어 벌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감옥에 가게 돼 원래의 취지와 맞지 않게 됐다"라며 "그중에는 나이가 너무 어리거나 많으신 분, 가장이 옥살이를 하게 되면 생계가 끊기는 한부모 가정 등 감옥에 안 가도 좋을 것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고 장발장은행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하지만 장발장은행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일각에서는 '결국 장발장은행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른 범법자다'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오 운영위원은 "일상생활에서 형사처벌이 가능한 범죄가 너무나 많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단순 '쓰레기 투기' 경범죄 세칙에서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을 예로 들며 "이런 행위들이 감옥에 가야 하는 '특별히 해로운 행위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 운영위원은 과태료 부과로도 충분한 기초질서 위반행위에 대해 국가가 벌금을 부과하고 있는 것은 행정적 편의를 위한 과도한 처벌이라고 꼬집었다. 벌금은 과태료와 달리 납부를 미루면 옥살이를 해야 하기에 납부율이 높다는 것이다.

오 운영위원은 가벼운 기초질서 위반행위를 범죄로 보고 처벌하는 현행 벌금제도를 손보는 것이 당장 어렵다면 피고인의 하루 수입을 단위로 벌금 액수를 정하는 '일수벌금제'라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벌금 200만원이라면 소득이 많은 사람은 2000만원을 내고 적은 사람은 20만원을 내도록 하자는 것"이라며 "100배 차이라 커 보이지만 독일의 경우 1일 벌금액이 1유로에서 3만유로까지 3만배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일수벌금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으며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취임 후 여당과 함께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오 운영위원은 현재는 관련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음에도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고 있다고 한탄했다.

오 운영위원은 장발장은행의 최종 목적을 '빨리 문을 닫는 일'이라고 말했다. 벌금제가 개선돼 벌금을 내지 못해 옥살이를 하는 사람이 없어져 장발장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지길 바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 운영위원은 "문재인 대통령, 추미애 법무장관, 여러 국회의원들, 법원에 호소합니다. 오늘이라도 좋고 내일이라도 좋으니 빨리 저희 문 닫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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